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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영권 (성 프란시스 한인성공회 주임신부)
먼저 이렇게 미주현대불교 창간 20주년을 경축하는 귀한 자리에 이웃 종교 성직자를 초청해 함께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불교계의 여러 지도자 및 불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는 맥클레인 버지니아에 있는 성 프란시스 한인성공회에서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성당에서는 보림사 주지 경암스님을 초청해 동양화 강습회를 가진 것이 인연이 되어 보림사 식구들과 성 프란시스 식구들은 한 형제 자매처럼 지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벌써 두차례의 강습회를 공동으로 갖고, 금년도 초파일에는 제가 보림사에서 축사를 할 정도로 우리들은 상호존중관계에 의한 아름다운 열린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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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에서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미국땅만 보더라도 유대교, 천주교, 개신교, 불교, 이슬람 등이 공존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상호존중관계입니다. 일부 근본주의 종교집단들처럼 나의 종교가 당신것 보다 더 우월하다, 또는 내 종교에만 진리가 있고 구원이 있다는 식의 태도는 사회에 분열을 가져옵니다. 이러한 성숙하지 못한 종교적 선입견과 편견은 다름 가운데에 조화를 이루고 살아야 하는 이 사회에 차별과 미움과 증오심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종교를 믿던 간에 모든 구도자들은 타종교에 대하여 이해와 동반자 관계라고 하는 상호 열려있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얼마전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스님이 함께 한 자리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성당에선 목탁 소리가 울려퍼지고, 사찰에선 할렐루야가 울려퍼지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두 분 사이에 함께 공유하는 영성의 공통분모가 없었다면 그런 대화를 두 사람 사이에 주고 받을 수는 없었겠지요.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다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그 고유 가르침의 내용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은 인겨과 인품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됩니다. 여기에 한 그릇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릇은 어떤 내용물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기를 내용물만 중요하지 그릇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내용물과 그릇을 따로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릇이 없으면 내용물을 담을 수 없고 내용물이 없는 그릇 또한 빈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의미의 존재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론 내용물이 중요하지만 그 내용물을 담은 그릇 역시 내용물에 걸맞게 보기 좋고 훌륭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격과 인품인 것입니다.
여기 한 예가 있습니다. 어떤 두 사람이 길을 걷다가 각자 돌을 하나씩 주웠습니다. 한 사람은 다이아몬드를 주웠고, 다른 한 사람은 수정을 주웠습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를 주운 사람은 절대로 그것을 자랑하거나 보여주어서는 안됩니다. 다만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그 사람이 수정을 주운 것에 대하여 부러워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의 인생이 수정으로 인하여 즐거움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네가 주운 것은 수정이요 내가 주운것은 다이아몬드니라 하며 보여준다면 그 사람은 그 수정으로 인하여 번뇌를 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어떤 악한 일을 하는 생각까지 하게도 만들수도 있게 됩니다. 결국 그 사람에게 죄를 제공하는 건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의 힘이란 결국 인격과 인품에 의하여 드러나는 것입니다. 결국 다이아몬드를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보이지 않고 감추는 힘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힘은 절제와 겸양이 동반된 기쁨을 내 인생에 가져다 주게 됩니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내가 주운 돌이 다이아몬드로 보이든, 수정으로 보이든 그것을 보는 힘은 내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종교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한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나 종교란 어떤 것을 하게 하는가 라고 질문한다면 밝은 그릇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그릇을 통하여 우리는 그릇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깜깜한 그 무엇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밝은 그릇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은 내적인 것이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내적인 것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인격과 인품인 것입니다.
자신의 종교가 불교이든 기독교이든, 모든 구도자들은 자신의 종교와 상관없이 이 부분만큼은 공통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체득된 이 공통분모는 다 함께 공유되어야 합니다. 이 공통분모의 영역 안에서 우리는 함께 친구가 될 수 있고 진리를 향한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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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주현대불교 제233호 (2009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