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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 칼럼] 모두가 억울하리 – 최보식 선임기자 congchi@chosun.com당신에게 충고한다… 까짓 하루만 견뎌라
기억, 오래 안 간다… 청문회란 그런 것이다
탈법 ‘관행’ 하나 없이 어찌 공직자 되나… 절대 사퇴 말라
인사청문회가 끝났다. 후보의 ‘도덕성’을 너무 따지는 이런 청문회 때문에 장관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걱정한다. 이는 고위 공직을 너무 낮게 본 처사다. “언제라도 불러만 다오” 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줄을 서고 있다. 사람이 넘쳐나 걱정일 뿐이다.이 때문에 앞으로 청문회 자리에 한번 앉아 보겠다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다. 자신이 살아온 행적을 살펴서 위장전입, 탈세, 부동산 투기, 논문 중복 게재 중 어느 하나 걸리지 않는다면 청문회 대상 자격에서 탈락이다. 적어도 이 중 하나는 해봤던 인사라야 ‘고위공직자’ 후보군(群) 목록에 들어있다.
우선 명심할 점은 과거의 실정법 위반 따위에 위축될 필요가 없다. 세월이 지났다. 후보들이 하나같이 “그때는 관행(慣行)”이라고 합창했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이를 너그럽게 ‘관행’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혹시 끝까지 위법이라고 우기면 사람의 능력을 높이 살 줄 모르는 편벽된 사람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청문회에서는 ‘정략적인’ 의원들이 또 이를 갖고 도덕성 시비를 반복할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겠다는데, 온갖 구질구질한 삶의 땟국물을 다 들춰내면 아무리 수양이 됐다 해도 참기 어렵다. 부풀리고 의혹으로 공격하고 해명할 기회도 충분히 주지 않는다. 속 터지는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만(길게는 이틀) 견뎌내라”고 충고를 하고 싶다.
인사청문회의 답은 하루만 ‘공개 망신’ 당하면 통과된다는 데 있다. 현재 장관직에 앉아 있는 분들을 보라. 이들도 비슷하게 험한 길을 걸었다. 대부분 청문회에서 위장전입, 탈세, 부동산 투기, 논문 중복 게재 중 어느 하나에는 걸렸다. 그날 하루 요란하게 떠들었을 뿐, 지금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사람의 기억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장관이 되고 나면 청문회의 수모가 어느 시절 얘기였는지 가물가물해진다.
물론 청문회 자리에 대뜸 앉은 이들 중에는 자신이 살아온 행적이 어두침침해, 스스로 생각해봐도 쉽게 설명이 안 되는 구석이 있다. 설마 고관대작의 위치까지 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때늦은 후회와 원망의 감정이 있을 수 있다.
이럴 경우 혼자서 감당하려는 것은 바보짓이다. 부인과 자녀를 동원하고, 장인 장모 처삼촌 처조카 일가친척을 모두 앞세워 방패막이로 쓰는 게 좋다. “난 꿈에도 몰랐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라. 실제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인이 대신 투기꾼의 오명을 덮어쓰고 장모가 사채꾼이 될 수도 있다. 최고의 공직에 가려면 식구와 일가친척들의 ‘단합된’ 희생이 뒷받침돼야 함을 위안 삼아야 한다.
이 단계에서도 여의치 않으면, “국민에게 죄송하다” “크게 반성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게 좋다. 소위 값싼 동정이 도움 될 때가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위세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께름칙할 수는 있다. 하지만 듣는 누구도 이를 진정한 반성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상관없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점은 맹렬한 공격을 받더라도 먼저 자진 사퇴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여기서 난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은 우리 풍토에 맞지 않는다. 세상이 숭배하는 가치는 ‘높은 자리’다. 귓전에 온갖 말이 들리고 이름이 땅에 떨어져도 흔들려서는 안된다. 지금 당장 사법당국에 불려가 조사받게 되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사퇴하는 경우를 빼면 말이다.
그렇게 청문회의 하루만 견뎌내면, 청와대도 “이는 직무수행에 결정적인 결격 사유가 아니다”고 인정한다. 다섯 차례 위장전입을 하고도 국민의 심판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모시고, 이제 지지율도 50%를 상회한 쪽의 판단이다. 실제로 업무능력과 도덕성이 반비례할 때도 있긴 있다.
우리 청문회는 후보들에게 하루 ‘망신’을 줄지언정 결과가 늘 좋다는 게 장점이다. 대통령이 각료를 임명하기 전 한바탕 떠들어대는 ‘예능쇼’로 여기면 된다. 미국처럼 백악관에 들어가려던 인사가 가정부의 사회보장세를 내주지 않아 946달러(약 120만원)의 과태료 미납으로, 그것도 14년 전의 ‘아주 사소한’ 일로 물러나는 각박한 사례는 결코 상상할 수 없다.
이상의 조언을 다 듣고 난 뒤, 혹 “그러면 왜 인사청문회를 하는 걸까요” 묻는다면 나는 답이 없다. 청문회 ‘공격수’를 자랑했던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향후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는 이들은 몸조심할 것”이라고 했다. 오늘의 청문회로 후세의 경계(警戒)를 삼으려 함일까. 청문회에서 후보들은 억울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대다수 국민들은 몹시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