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보니 횡설수설

  • #102122
    Nothing 72.***.13.59 2244

    아이고님의 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공대출신이라서 성경의 비합리적인 부분이 믿음을 갖지 못하게 되는 요소중 하나라고 하셨는데, 사실 공대출신이시라면, 현재까지 배운 모든 것들이 진리라고 확신하시는 것 자체도 모순입니다.
    예를 들면, 1이라는 것과 2이라는 점이 있다면 1에서 2로 가는 연속선을 거치면 2로 가는 것이 맞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1과 2사이에 무한대의 숫자가 존재한다는 것도 이해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1에서 2로 가는 것은 그 무한대의 숫자들을 거쳐서 가야한다는 것인데
    이게 가능하지 않지요? 현실적으로요.
    왜냐면 1과 2사이에는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 무한대의 숫자를 거쳐가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이지요.

    하지만 수학자들은 1도 있고 2도 있다는 명제에 동의를 한 뒤에 수학을 발전 시켰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0이라는 숫자도 발명했지요.
    무슨 말이냐면, 1이 있고 2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수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양과 서양 철학의 차이점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다른 예도 들어보지요. 우주는 현재도 무한대로 팽창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얘기가 그렇지요. 그렇다면 무한대로 팽창당하고 있는 그 지역,
    즉, 현재의 우주라고 하는 지점이 아니었던 지점은 무얼까요?

    그 미지의 지점은 현재도 있는 곳일텐데, 앞으로 우주에 편입될 지점이기도 하구요. 결국엔, 1과 2사이의 무한대라는 그 예와 같이 우주도 지금 1의 지점에 있는데 2의 지점으로 무한대로 팽창하는 것과 같은 그런 현상이 아닐까요?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글을 길게 쓰다 보니, 헷갈리기도 하네요.
    제가 원글님의 말씀을 반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문제도 믿음의 문제가 아닌가.
    결국엔 과학이나 수학이나 철학이든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이 세계에는
    미지의 것들이 훨씬 미약한 우리의 존재를 압도한다는 사실입니다.

    결국엔 1에서 성큼가면 무한대를 뛰어넘어 2로 갈 수 있다는
    이 믿음이 없으면 어떤 것이든 허물어지기 쉬운 모래성이 아닐까 하는 것이구요.

    종교라는 문제도, 보는관점에 따라 허술하기 짝이없는 성경이라는 것도
    믿음이 빠진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모래성 쌓기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것이지요.

    결국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믿음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요?

    글쎄요. 저도 잘 모릅니다. 저도 발견한 것은 아니구요. 누군가가 수학공부하듯이
    여기 1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그걸 받아들이라고, 그리고 2, 3 이라는 것에 정의를
    내리고 내게 주입시켜주고 그걸 믿으면서 공부를 시작한다면야 쉽겠죠.
    하지만, 이게, 수학공부와은 다른 것이어서, 저도 여러 생각을 맏이 했었습니다.

    저를 티스푼이라고 해봅시다. 저의 용도는 커피를 뜨는 용도이지요. 내가 아는 세계는 내가 접한 세계밖에 없습니다. 공기, 티스푼이 있는 용기, 등.
    내가 세계를 새롭게 접하는 시기는 누군가가 나의 용도가 필요해서
    나에게 다가올 때지요. 어떤 사람이 와서 나를 만지고 커피를 한숟갈 풀때
    나는 나의 용도대로 쓰임일 당하는 것이고 세계를 만나는 것이지요.

    아마, 종교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과 나라는 것의 관계도 그것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티스푼보다는 사람의 세계가 더 큰 것이기에,
    신과 사람의 관계도 신의 관계가 더 큰 것이기에,,
    세계가 더 작은 인간으로서 신이 와서 나의 용도로 나를 써줄 때,
    그 때야 비로서 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좀 수동적인 세계관일까요. 하지만, 그 방법말고는 다른 뽀족한 방법을 찾기 힘들어보입니다. 다른 좀더 쉬운 방법이 있으면 좋겠군요.

    • 소리네 199.***.160.10

      “왜냐면 1과 2사이에는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 무한대의 숫자를 거쳐가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이지요.”
      –>
      말씀하신 것은 Zeno의 파라독스와 비슷한 것인데요,
      무한의 개념을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군요.

      Zeno의 파라독스에 나오는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매번 이전 거리의 1/2 씩 달리는 얘기가 나오는데,
      수식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이 무한대 갯수의 숫자들을 더하므로 Sum이 무한대가 된다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Sum = 1/2 + 1/4 + 1/8 + 1/16 + 1/32 + …

      하지만, 이 Sum은 무한대가 되지 않고 1이 됩니다.

      즉, 무한개의 숫자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거쳐가는데 무한대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무한개의 숫자들을 더한다고 해서 그 합이 꼭 무한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1과 2 사이에 무한대의 숫자가 있어서 2가 될 수 없지만 2가 있다고 믿어서 발전을 한 것이 아니라,
      1, 2가 있다고 먼저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 사이를 무한대로 나눌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말씀하신 것의 핵심은 아니고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 생각하면 이런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기본 개념을 오해하고 논지를 전개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 67.***.223.144

      (나는 머리아픈거 질색이라서 조심스럽게 댓글을 답니다. 내 댓글에 분명히 물고물리는 사유가 가능합니다.)

      우선 우리가 학교교육을 유치원부터 받으면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간과해버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1. 수학과 과학은 서로 다른 두가지 동물입니다. 수학은 머릿속에 가상적인 세계에서 발명되었고, 과학은 수학을 실제 세계에 적용하기 하는 도구로 이용합니다. 무슨말인가 하면 수학은 실제세상을 거의 대부분 잘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따져보면 전혀 실제와 다릅니다. 그냥 다 근사(approximation)를 할 뿐입니다. 그리고 수학을 물리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가정들과 새로운 개념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산수에 연습으로 배우는 문제들(차의 속도, 거리 문제, 물탱크의 물의 양 계산 등등)에서 다루는 것들은 사실은 수학이 아니라 다 과학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개념의 확장이 바로, 시간, 길이, 질량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한의 개념은 아마 대부분 순수한 수학적인 개념에 속한것 같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연구하고 경험하는 물리적 세상에서는 무한의 개념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2. 과학에서는 실제로 세상이 연속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고등 수학이 다 세상이 연속적이라는 “가정”하에 수학적 도구를 쓰고 있습니다 (미적분). 그렇게 가정해도 그냥 그럭저럭 설명할수 있는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수학자중 한사람이 이 부분에 주목해서 프랙탈이라는 수학을 만들어 내었는데, 아직도 이분야는 초보단계이고 아직도 이 불연속적인 개념을 수용한 수학도구를 어떻게 이용해야 될지 그러한 도구들은 아직도 많은 개발이 되어져야 합니다. 불연속인 개념을 포함한 프랙탈 도구가 잘만 개발되어 오늘날 미적분개념이 설명하는 물리계를 잘 설명할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학문의 새로운 혁명이 있을 것입니다 (사견).

      3. 우리가 쓰는 수학은 그것 자체가 상상으로 머릿속으로 정의된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인 물리계와 독립적으로 말입니다. 이런 정의 방법을 우리가 고등학교수학에서 처음으로 접하게 됩니다. 바로 “명제와 정의”에서 말입니다. 거기서 덧셈의 정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사대 연산의 기본적인 가정과 정의에 대해서 배우죠. 왜 0 의 개념이 필요하고 항등원 뭐 그런 개념을 배우죠…그리고 사대연산뿐아니라 우리가 필요하면 다른 이상한 기호(예를 들어 세모나 네모)를 이용해서 우리가 연산을 “새로”정의할수도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이런 모든것들이 물리계에 적용하기 위해서 나중에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원글분이 말씀하셨듯, 이 정의에서부터 어떤 (당돌한 문제아) 천재같은 초등생이, “선생님, 저는 0 를 받아들이기 싫어요. 세상에 그런게 어딨어요?” “아까 보여준 사과, 선생님이 뒤에 숨기셨쟎아요?” “사과와 사과를 서로 충돌시키니까 깨져서 4 쪼각이 되었네요? 그러니 1+1=4도 맞쟎아요?” 이렇게 말해버리면 더이상 그 초등생은 진도를 나갈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이 학생을 매라도 때려서, 억지로 받아들이게 해야 합니다.

      4. 물리계의 이해는 경험과 실험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런 이유로 신약의 여러가지 기사가 믿을수 없게 되는 것이죠.(물위를 걷는다….오병이어….병고침…). 또는 구약에서도 많은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게 에스겔 23장인가 보면 뼈들에 살이 붙어 사람들이 되살아 나옵니다. 경험상 우리가 그런걸 일상생활에서 본적이 없는데 믿는데 아주 큰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리계에서 위의 기적들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물리에서는 시간여행도 가능하다고 하는 물리학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론적으로 불가능한것은 아닌데, 이 일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니까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죠.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는것도 쥐라기 공원에서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 경험이 다 많는것은 아니고 (근본적으로 근사적인 해석도구를 이용하는) 물리법칙이 다 맞는것이 아닙니다. 현대물리를 공부하다보면 빛의 이중성이라는 것이 왜 오랬동안 빛에 대해서 사람들이이해를 못했는지를 항상 이야기 합니다. 이것도 이중적으로 행동하는것을 그전에 경험해본적이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현대과학의 꽃이라 부르는 양자역학에서도, 플랑크 시간, 플랑크 길이, 플랑크 질량 이전의 스케일들에 대해서는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아예 설명하고 증명할 도구가 절대 없다고 항복하고 있습니다. 결국 현대물리 입장에서 보면 시공은 다 불연속인 것이죠.

      우주가 시공간적으로 무한한가요? 유한한가요? 상대론에서 4차원 개념을 이용해서 이것을 설명하려 합니다만….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상대론도 결국 처음부터 “빛의 속도는 유한하고 상수이다”라는 가정부터 출발합니다. 누군가가 다른 정의를 들고 와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한다면 많은 이론들이 바뀌어 버릴수있습니다. 세상은 세상이고, 학문은 학문입니다. 학문은 우리가 세상을 우리의 경험대로 이해할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줄 뿐이고, 아예 우리가 그런도구가 없거나 그런 도구를 믿지 못하면 그런 세상(정신세계 영적현상 등 어떤 사람은 저에너지의 세계라고도 하더군요)은 알수 가 없게 되는 거지요.

      위댓글에서 언급된 제논의 역설은, 물리개념이 들어가지 않은 순전히 수학적인 이야기 입니다. 여기에 물리의 개념인 시간과 속도개념을 혼동해서 쓰면 머리가 혼란해집니다. 세상에 어떤 개미나 거북이가 처음에 한발짝걷고, 다음엔 반발짝, 그리고 다음엔 반에 반발짝 걸으며 목표지점에 갑니까? 그렇다해도 개미가 분명 싸이즈가 있는법인데, 제논의 역설은, 순수한 수학적인 개념의 점과 선 상에서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는 것이지요. 시간의 개념도 필요 없구요.

    • Nothing 72.***.13.59

      이렇게 수준 높은 답글이 달릴지는 몰랐습니다. 제글을 시간을 들여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