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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6329.html
“뿌리는 한국-머리는 미국…‘트윙키’ 보이의 눈물”
인기 아이돌 그룹 투피엠(2PM)의 리더 박재범(22)씨가 ‘한국 비하 발언’을 이유로 지난 9일 쫓겨나듯 미국으로 떠났다. 11일까지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번 사태의 주인공인 미국 이민 2·3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이민 2·3세들을 잘 아는 사람들은 박씨를 보며 ‘트윙키’를 떠올렸다고 입을 모았다. 이민 2세인 홍아무개(24)씨는 “박씨가 2005~07년에 쓴 글들은 ‘트윙키’스러운 표현”이라며 “미국에서 주변 친구 넷 중 하나 정도는 트윙키한 친구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 비율이 미국에서 가장 높은 동네 가운데 하나인 뉴저지주 팰리세이드에서 자랐다.트윙키는 미국 백인 주류사회에 동화되고자 하는 아시아계를 일컫는다. 이들은 부모 세대의 나라 말을 모르며 그 전통에도 관심이 없다. 현재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유학생 ㅎ아무개(30)씨는 “그들의 정체성은 그냥 미국인에 가깝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을 미국인으로 생각함에도 아시아계의 외모를 갖고 있어 기대와 다른 대접을 받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간혹 부모 나라에 대한 ‘나쁜 농담’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미국 버지니아에서 생활했다는 한 누리꾼은 한 대학 누리집 게시판에 “(트윙키 사이에선) 친구들끼리 한국을 비하하지 않으면 바보(nerd) 취급받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고 적었다. 그는 박씨의 글도 그런 표현의 일종으로 봤다.
이민 2·3세는 보통 초등학교 때는 인종 구분 없이 섞여 놀다가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며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 홍씨는 “중·고등학교에 가면 보통 백인, 흑인 등 인종별로 친한 그룹이 형성된다”며 “각 그룹에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고 전했다. 머리 모양, 입는 옷, 듣는 음악마저 그룹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변에는 주로 미식축구부 등에서 운동하는 아시아계들 사이에 트윙키가 많았다고 홍씨는 전했다. 투피엠의 박씨는 2004년 현지 오디션에 발탁되기 전, 미국에서 비보이 활동을 하던 고등학생이었다. 홍씨는 “트윙키냐 아니냐는 개인의 선택일 뿐 이를 두고 심각한 정체성 갈등이 있다고 보는 건 옳지 않다”며 “보통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트윙키들 가운데에는 성장하면서 자신의 뿌리를 되돌아보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이민 1.5세인 전남대 박준규 박사(인류학)는 “트윙키는 학창 시절이라는 인생의 한 시점에 나타나는 또래 사이 정체성의 차이를 상징하는 말”이라며 “박씨의 과거 표현을 두고 마치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과잉반응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