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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 미군정 당국은 남한에서 기독교 우대정책을 시행하였으며 한국교회 지도자들도 기독교적 가치를 토대로 둔 건국 기치를 교인들에게 강조, 설교했다. 한경직 목사도 기독교적 이상에 바탕을 두고 건국되기를 설교를 통해 염원했으며, 1945년 12월 결성된 기독교신민회(대표 박용희 목사)도 그리스도애의 사회적 구현, 십자가의 건국이념을 추구했다.
이러한 환경은 1948년 이승만 정부 하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승만의 기독교 국가건설 비전은 1948년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고 난 후, 국가의전, 국가제도, 기독교인의 중용 등을 통해 구체화되어 갔다.
김 교수는 “이승만 정부 하에서 기독교만을 위한 국가제도 창설의 전형적인 예는 군종제도”라며 “1951년 2월 군종제도가 공식적으로 도입되면서 1954년 4월 군목의 수가 199명으로 증가했으며, 1955년 8월에는 352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그 결과 1954년에 이르러서는 전체 장병 중 기독교인 장병 비율이 24%나 차지하게 됐다.
또한 국가기구 중요 직책에도 기독교인들이 많이 중용됐다. 기독교인의 정부 요직 기용은 미 군정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이승만 역시 다수의 기독교인들을 권력구조에 충원시켰다. 제 1공화국의 19개 부처 장·차관 242명 중 개신교인의 비율은 38%였으며, 이 가운데 각 부처의 장관 135명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개신교인의 비율은 무려 47.7%에 달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가 그 도를 더해 가면서, 그 당시 분열의 길을 걷고 있었던 한국교회는 관변단체로 전락해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승만의 친기독교 정책 근거가 뭐냐고 하셨죠?출처는 기독교를 ‘hate’하는 안티들의 싸이트가 아니라 우리나라 최대 인터넷 기독교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