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거짓 감상의 논리

  • #102035
    콩자반 99.***.228.19 2142

    어느 신문들이 그렇지요. 이들은 평소에는 늘상 누군가에 대한 증오를 부채질하는 것으로 빌어먹고 삽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점잖은 목소리로 참담한 현실을 들먹거리며 우리 국민성이 어떠하다느니 훈계를 하려 듭니다. 오랜 치매로 고생하던 노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맑은 정신이 돌아온 것 처럼 말입니다. 그 동안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어디 우주로 한 100년동안 나들이라도 다녀온 양 말투의 어디에도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현실을 짐짓 고통스러워하는 것 처럼 말하지만 이렇게 된 과정에 대한 성찰이 의도적으로 빠져있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은 그런 거짓 감상에 이제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지에 몰린 자국민들을 미워하는 현실이 슬프다면 그렇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고 우선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참된 종교인이라면 그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죄를 참회하라고 그 종교가 가르치지 않습니까? 지금 지는 것으로 결국은 이기게 되는 종교의 힘은 바로 이런 자세로부터 나옵니다. 부정하고 싶어도 한국사회에서 개신교에 대한 혐오분위기는 유행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이제 현실입니다. 그것은 젊은 층, 식자층일수록 더합니다. 일부의 잘못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라고 억울해 하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것 같지 않습니까? 여전히 교회문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지긋지긋해 하는 것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무사귀환한 사람들을 기쁘게 맞이해주는 미국이 부럽다” – 이런 견강부회의 논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반감만 양산합니다. 어느 고명하신 목사님께서 일요일날 설교할 때 썰을 푸는 논리로는 쓸 만할 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듣는 사람들이 모두 무지랭이는 아닙니다.

    • abo 62.***.226.74

      Good po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