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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소년’ 송유근 부자가 말하는 한국 영재교육의 현주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1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다. 지식기반 산업 사회가 되면서 인재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 가고 있다. 최근 서울시에 학교별 영재반이 생긴 것이나, 이명박 정부가 2010년까지 전체 학생의 1%인 7만 여 명이 영재교육을 받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인재의 중요성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천재소년’으로 불리는 송 군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초등학교를 3개월만 다니고 독학으로 중·고교과정을 마친 뒤 2006년 인하대에 입학했던 송군은 오는 2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한국천문연구원 석사과정에 입학한다. 송 군의 후원자 천문연구원 박석재 원장은 “유근이의 영재성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도드라져 있었다”고 평했다. 그는 송군을 책임지고 박사로 만들어 보이겠다고 밝혔다. 그것도 보통 물리학 박사가 아닌 빌 게이츠나 스티븐 호킹을 능가하는 대단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14일 아버지 송수진(51) 씨와 송유근(12) 군을 만나 최근 한국의 영재 교육의 현 주소에 대해 들어봤다. 동아닷컴이 송 씨 가족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UST에 정착하기 까지 아들의 일로 마음고생이 컸던 아버지 송 씨가 언론 인터뷰에 소극적이었던 것. 기자는 1월초 2살 된 딸아이를 데리고 구리시 유근이네를 방문한 뒤 인터뷰 허락을 받았다.
현재 송 씨 가족이 주중에 지내는 곳은 대전시 한국천문연구원. 아직 입학 전이지만 1월 초부터 이 곳에서 유근이는 석사과정 연구원으로서 천체물리학을 공부를 시작했다. 연구원 박석재 원장은 유근이의 지도교수로서 교재까지 의욕적으로 집필중이다.
“유근이는 연구원, 월급도 받아”
유근이가 대학을 중퇴하고 들어간 UST는 학부는 없고 대학원만 있는 형태의 연구기관이다. 독립된 연구소들이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원들을 뽑는다. 아버지 송수진 씨는 유근이가 원래 바랐던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 때문에 이 곳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송수진 씨는 소립자를 연구하고 싶었던 유근이가 우주에서 벌어지는 현상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않을까 해서 이 곳에서 공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게 과학자지 칠판만 보는게 과학자는 아니지 않나요? 질문이 있어 선생들에게 들고 가면 ‘학부에선 안 된다. 석사 학위 논문 감이다’라고 해서 대학원을 가든지 연구소를 가 보자고 이 곳에 오게 됐습니다. 이창호 9단이 바둑 천재라고 하는데 바둑 한판을 두기 위해 16년간 뭐를 해야 한다면 어린 시절 갖고 있던 많은 호기심들은 날아갔을 겁니다.”
이 곳에서 유근이는 어엿한 석사 과정 연구원으로서 연구실도 있고 월급도 받는다. 월급 액수는 80여만 원. 이 돈으로 밥도 사먹고 차비도 한다. 천문연구원 박석재 원장은 어린 나이의 유근이의 적응을 돕기 위해 가칭 ‘송유근 프로젝트’를 발족했다.
유근이에게 ‘박사 학위를 언제 딸 계획이냐’고 묻자 “박사는 연구를 혼자 할 수 있다는 자격증과 같은 것인데, 연구를 하다 보면 언젠가 혼자 할 수 있게 되겠죠. 되도록이면 빨리 따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남 몰래 좋아해온 7살 상냥한 ‘그녀’
유근이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밥 먹고 8시 경부터 공부를 시작한다. 8시부터 12시까지 공부를 하고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다른 연구원 형님들과 탁구를 친다. 다시 오후 시간 공부를 한 뒤 테니스를 치고 숙소에 들어가 9시에 취침한다. 취미 활동으로는 드럼을 치는데, 이 밖에 스키를 타거나 농구를 하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고.
유근이가 아직 어리다 보니 또래와 지내는 시간이 적다는 점을 우려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정작 유근이 본인은 원래부터 공부는 혼자 하던 것이라서 크게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따금씩 함께 노는 또래 친구들도 15명가량 있다고. 이 아이들과 생일 파티를 하거나 게임을 하며 논다고 한다. 아이답게 “노는 것과 공부 둘 다 재밌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냐고 묻자, “여자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당당하게 전했다. 작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 사춘기가 시작되려나 보다. 이상형을 묻자 “똑똑하고, 예쁘고, 성격도 착하고” 등등 조건이 많았다. TV를 보지 않아서 이상형에 근접한 연예인을 말할 수는 없다고 하는데, 마음속에 점찍어둔 친구가 있나 해서 떠보니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결국 “있다”고 고백했다. 유근이에게 굉장히 상냥하고 싹싹한 7세 꼬마 숙녀라고 한다. 곁에 있던 어머니 박옥선(51) 씨가 ‘유근이의 그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하려고 하니 유근이가 막았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외국서 살던 아이라서 그런지 만나면 단추도 채워주고 옷의 먼지도 털어주고 굉장히 붙임성이 좋은 동생이라고. 유근이는 이런 그 아이의 행동이 “자신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녀가 너무 어려서 아직 고백할 수는 없다는 것이 유근이의 설명이다.
자칭 ‘꽃미남’인 유근이에게는 누님 팬들도 많다고 한다. 유근이에게 ‘꽃미남이 뭔지 아냐’고 묻자, “알아요, 미남들의 왕”이라는 아이다운 대답이 이어졌다.
▲이철 동아닷컴 기자
“유근이 지원하던 신동 프로그램은 만료돼”
2006년 유근이를 지원하기 위해 떠들썩하게 발표됐던 ‘과학신동 프로그램’은 3년 기한이 끝나 지원이 종료된 상태다. 당시 유근이에 이어 제2, 제3의 과학신동들이 배출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영재교육지원과 관계자는 2006년과 2007년에 KAIST 산하 영재심사위원회에서 신동 심사를 했으나, 걸 맞는 아이가 없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신동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영재교육시설이 비약적으로 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더구나 지원 기간 3년도 지나치게 짧다.
송수 진씨에게 ‘더 이상 국가로부터 지원 받는 것은 없느냐’고 묻자, “유근이가 UST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된 것 자체가 지원”이라고 짧게 말했다. 할 말은 많지만 마음속에 꾹꾹 담아 두고 있는 듯 했다. 대신 “유근이를 담당하는 정부 당국자가 너무 자주 바뀌어서 신동 프로그램이 종료된 것도 몰랐었다”는 말을 했다.
유근이는 영재교육원, 영재학교 등 일반적인 영재교육 프로그램대로 따라 가지는 않았다. 영재학교를 잠깐 다닌 적은 있지만 영재학교 교육 시스템은 교사의 틀대로 가르치는 시스템이라 스스로 혼자 연구하고 공부하는 유근이와는 맞지 않았다. 물리문제를 푸는 방식을 두고 교사와 충돌한 적도 있다. 사십 여 분마다 반복되던 쉬는 시간도 문제였다. 유근이는 답을 얻을 때까지 몇 시간씩 앉아서 공부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서울 과학고를 서울영재학교로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는지 모르겠어요. 유근이는 저 혼자 헤매다가 여기까지 온 겁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아이들을 가르칠 것인가 입니다. 바둑으로 말하면 조훈현 한명이 이창호를 만들어 내고 바둑판을 다 바꿨습니다. 영재교육도 전국의 연구소의 교수들이 후학 하나만 잘 가르치게 하면 7000-8000 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초·중학교 과정에서 영재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고교 진학을 앞두고 현실적인 고민에 빠지게 된다. 고교에서 영재교육을 받을 기회가 급격히 줄고, 대부분 영재들은 명문대학, 의대 진학을 위한 입시전쟁에 뛰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송 씨는 영재교육도 사회 전체적인 시스템에 의해 마련돼야 하지 않나 하고 걱정했다. 이 아이들을 가르쳐서 어떻게 사회에서 써 먹을 것인지 국가적으로 시작과 끝을 총괄해서 검토해야지 하나의 트렌드로 영재 학교를 확장하는 데에만 골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시스템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우리도 이런저런 걱정 없이 아이에게 노력을 쏟을 텐데요. 연예기획사에서도 가수 한명 만들 때 몇 년 씩 가르치고 매니지먼트 하잖아요. 과학 영재교육도 그런 방식으로 해야 해요.”
“유근이를 키운 비법은…”
지나친 평등주의 때문일까. 월반이라는 제도가 있어도 또래 엄마들이 걸고 넘어가기 때문에 월반을 해주는 교장 선생님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과거 유근이를 월반 시키신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도 너무 시달려서 다시는 안 해 주겠다는 말을 했었다. 모두가 영재라고 승복하려면 한 분야 영재가 아니라, 모든 분야를 두루 잘하는 아이가 아니면 안된다. 이 때문에 앞으로 마련될 각 학교 영재반도 ‘선행 학습반’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유근이가 왜 해외 유학을 가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다. 아버지 송 씨는 “피겨 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나, 박태환 수영 선수가 유학파는 아니지 않느냐”며 “이 땅에서 유근이가 성공하면 다음 영재들도 여기서 계속 클 수 있다. 교육이든 뭐든 여기서 해야지. 외국을 따라잡는 게 목표지, 그들을 따라해 봤자 짝퉁 아니냐”고 반문했다.
학부모들은 유근이가 공부하는 비법도 궁금해 한다. 유근이가 수학과 물리학에 재능을 보이게 된 배경에는 ‘관찰’과 ‘기다림’의 교육법이 큰 몫을 했다. 그것은 육아 책을 읽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그런 육아 방식이 정답인 것 같아요. 한낱 거북이도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전부 산이 아닌 바다로 가잖아요. 모든 아이가 자기만의 뭔가를 터득하는 능력이 있어요. 맞벌이를 하다 보니 유근이는 7세까지 조부모 손에 맡겨졌어요. 태열이 있어 기저귀도 채우지 못하고 천둥벌거숭이로 키웠는데 할아버지는 얘를 보면 언제쯤 쉬할 줄 알고 그때 컵을 갖다 댔어요. 교육도 아이가 어떤 것을 원하는 지 관찰을 하고 사고 날 수 있는 부분을 부모가 미리 치워놓으면 유근이 정도는 클 수 있어요. 그 다음에 교육이 들어가면 되는데, 우리는 아이를 기저귀로 억누르는 것부터 배워요. 이러다 보니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능력을 다 쓰지도 못하고 가게 되는 것이죠.”
10년 후 유근 이는 어떤 사람이 돼 있을까. 유근이는 “그때도 별을 보고 있겠죠”라고 대답했다. “우주의 역사가 137억년이나 되는데 그중 10년은 아주 작은 시간이거든요. 제가 공부하려던 천체물리학은 별의 움직임을 수식으로 자세하게 연구하는 분야”라면서.
글=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영상=이철 동아닷컴 기자 kino2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