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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조선일보에 나온기사입니다.
오바마하고 이명박하고 무슨 공통점이 있다는 이야기 인지 도대체 이해가 안가네요 ^^“이명박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과 버락 후세인 오바마 제44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적잖은 공통점을 가졌다.
두 사람 모두 순탄치 않은 유년기를 보냈는데 이 대통령은 ‘가난’, 오바마는 ‘불안정한 가정환경’ 때문이었다.
이 대통령은 본인 표현을 빌리면 “먹을게 없어서 ‘술찌끼’를 먹고 학교에 갈” 정도로 가난했다. 술을 담그고 남은 찌꺼기(술 지게미)로 배를 채울 정도로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총명했지만 늘상 학비를 걱정해야 했다. 때로는 재래시장에서 과일 행상을 하는 어머니를 도와야 했다. 이 때의 경험은 훗날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교육정책으로 이어졌다.
미 캔사스주 출신 백인 어머니와 케냐 출신 유학생인 흑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오바마는 2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고향인 하와이를 떠나 인도네시아로 갔다. 어머니가 인도네시아 유학생과 재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두번째 파경으로 13살 때 고향인 하와이로 돌아왔다. 외조부가 살뜰하게 챙겨줬지만 잦은 환경변화와 인종차별로 인한 상처는 청소년기의 방황으로 이어졌다.
오바마도 이 대통령처럼 어린 시절의 서러운 기억을 생산적으로 승화시켰다. 모호한 정체성과 아시아에서의 어린 시절을 토대로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포용하는 능력을 키웠고, 이는 문화·인종을 초월한 ‘하나의 미국’이란 모토로 이어졌다.
‘강한 어머니’를 둔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이 대통령은 “내 스승은 가난과 어머니였다”고 단언하며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고교 시절 여학교 앞에서 뻥튀기 장사를 할 때,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밀짚 모자를 눌러 쓰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정직하게 사는건데 뭐가 부끄러우냐. 당당하거라'”
오바마의 어머니는 빈민구호용 식료품에 의존하면서도 교육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종종 새벽 4시면 자신을 깨워 직접 공부를 가르치던 어머니의 일화를 소개했다.
명문대 진학 이후 뒤늦게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점도 두 사람의 교집합 중 하나다. 포항 동지상고 출신인 이 대통령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면서 출세 가도를 달린다. 졸업 직후 현대건설에 입사해 마흔도 되기 전에 사장에 취임, ‘샐러리맨의 신화’가 됐다.
로스앤젤레스의 옥시덴털 대학에 합격한 오바마는 2년 뒤 뉴욕의 컬럼비아대 정치외교학과에 편입했다가 1983년 하버드대 법과대학원에 입학했다. 당시 오바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법률학술지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의 편집장에 뽑히며 두각을 나타냈고, 졸업 이후에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정치인의 꿈을 키워나갔다.
정치 경력이 길지 않다는 점도 공통 분모다. 이 대통령은 1992년 민자당 소속으로 14대 국회에 입성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15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국회의원 활동 기간은 10년도 안 된다.
1996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선출되며 정계에 입문한 오바마는 ‘미국은 하나’라는 감동적인 연설로 2004년 미국 연방상원의원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중앙 정치 무대 진출에도 성공했다.
기존 정치와의 차별화 전략도 공통점이다. 이 대통령은 ‘탈(脫) 여의도’ ‘비(非) 정치’를 표방했다. 소모적인 정쟁이나 권모술수는 지양하고 실용주의에 입각해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의지였다.
‘담대한 희망’을 역설한 오바마는 ‘변화’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40대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와 발군의 연설 실력을 앞세워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젊은 층을 사로잡았다.
본선보다 더 치열한 경선을 치른 것도 공통점이다. 이 대통령와 오바마는 ‘박빙’ 끝에 각각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라는 걸출한 경쟁자를 제치고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