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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의 리먼 인수포기, 현명한 선택?
정부·정치권, 민행장 비난 급급… “산은, 10조원 벌 기회 놓쳐” 지적도
김민열 기자 | 09/18 10:43 | 조회 3763
“2009년 3월. 미국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장문의 친필 서한을 보냈다. 한국산업은행(KDB)이 리먼 브러더스 인수금액을 지불해 서브 프라임으로 촉발된 수년간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리먼을 굿뱅크와 배드뱅크로 나누고 구조조정 성과와 6개월간 장부 가치를 바탕으로 인수가격을 책정한 KDB의 협상력이 추가적인 부실을 차단하는 효과를 입증하자 다른 IB들의 구조조정에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금융 소외지로 천대 받던 한국은 리먼 인수로 단숨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총아로 각광 받으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미국 투자은행(IB)들이 독식하던 정보채널(information arbitrage channel)을 자연스레 확보하게 됐다.”
지난 3개월간 은밀하게 추진돼 온 KDB의 리먼 브러더스 인수가 만약 성공했다면 이 같은 시나리오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수개월간 진행된 KDB와의 매각 협상이 결렬(9월10일)되자 리먼브러더스는 15일 뉴욕 남부법원에 파산보호(챕터 11)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48시간도 채 안 돼 영국 내 자산규모 3위 은행인 바클레이즈는 리먼브러더스의 뉴욕 본사를 비롯해 미국 영업부문을 자산 인수 형태로 사들였다.
미 현지에서 긴박하게 협상이 타결되는 동안 한국 정부와 정치권 안팎에서는 KDB가 리먼 브러더스 인수를 시도했던 것에 대한 책임론으로 시끄러웠다.
리먼이 파산보호를 신청하자 마자 청와대 일부 관계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리먼을 인수했을 경우 주가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있는데다 리먼의 도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며 “국부8조원 가운데 2조4000억원의 손실이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등 정치·경제적 리스크가 너무 컸다”며 이명박 정부가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는 ‘자화자찬’ 일색이었다.
17일 오전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 연석회의에 참석한 전광우 금융위원장도 “(리먼)실사를 했더니 부채비율이 상당히 컸다”며 “(산은의 리먼 인수가)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오래 전에 내렸다”고 말했다. 수개월간의 세부 협상을 모두 보고 받고도, 리먼 사태 이후 벌어질 혼란스러운 금융 상황에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같은 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 질의에 나선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은 “인베스트먼트 뱅크(IB: 투자은행)를 모델로 했던 국제금융질서가 붕괴되고 있는데 정부의 산업은행 민영화의 방법이나 절차는 IB를 모델로 하고 있다”며 아예 정부의 민영화 방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주장했다.
과연 KDB의 글로벌 IB 인수가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시도였을까.
수년 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우상으로 떠받들던 IB들이 일순간에 금융시장 불확실성을 야기하는 원흉으로 전락해 버린 결과에만 주목하고, KDB의 리먼 인수 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 청와대와 금융위 핵심 관계자들은 미 금융회사 추가 부실 우려와 글로벌 실물경제의 둔화라는 거대 명제에 편승해 세부 협상 내용에는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파산보호 이후 폭락한 리먼 주가와 KDB가 제안한 가격을 비교해 손실액을 뽑아내는데 급급할 뿐 인수 이후 철저한 리스크 관리 아래 얻을 수 있는 선순환 효과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막대한 레버리지와 직접투자로 만든 IB들의 고수익 비즈니스 모델이 유동성 위기 이후 거들떠 봐서는 안될 대상이 돼 버린 셈이다.
물론 싼 가격만 보고 무리한 차입을 통해 섣불리 글로벌IB를 인수할 경우 돌아올 부메랑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글로벌 IB인수 이후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대한 실력을 어떻게 쌓느냐에 관심을 갖기보다 시도 자체를 문제 삼는 세력들로 가뜩 차 있는 것이 현실이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나 정치권에서 협상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한 부탁일 만큼 시장과의 괴리감이 커진지 오래됐다”며 “외국계 은행들이 상여금의 형태로 주는 스톡 어워드(stock awards)와 스톡옵션의 차이도 모른 체 자극적인 이슈 찾기에만 급급한 정치권이 한심스럽다”고 말했다.
글로벌IB 인수는 우리 정부와 기업에 흔히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다. 바클레이즈가 리먼의 미국 영업 부문 일부를 인수했지만 리먼의 아시아지역과 유럽지역 매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바클레이즈의 리먼 자산 인수사실을 접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KDB가 10조원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아쉬워했다.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거창한 구호만 수년 동안 걸어 놓기 보다 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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