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신의 존재에 대한 논리

  • #100887
    데카르트 128.***.168.70 6702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그의 유명한 저서 Discourse on Method에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나 그의 이론을 자세하게 알고 계신분은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tracer 198.***.38.59

      wiki를 찾아 보았습니다. (discourse on method로)

      “Proof of God and the Soul”
      Applying the method to itself, Descartes challenges his own reasoning and reason itself. But Descartes believes three things are not susceptible to doubt and the three support each other to form a stable foundation for the method. He cannot doubt that something has to be there to do the doubting (I think, therefore I am). The method of doubt cannot doubt reason as it is based on reason itself. By reason there exists a God and God is the guarantor that reason is not misguided.

      Perhaps the most strained part of the argument is the reasoned proof of the existence of God and indeed Descartes seems to realise this as he supplies three different ‘proofs’ including what is now referred to as the negotiable “ontological proof” of the existence of God (some argue that Descartes inserted his statement on the existence of God in the Discourse on Method to appease censors of the time; a very serious concern, as within Discourse Descartes points out that he was at first reluctant to publish the work because of the recent show trial of Galileo by the Roman Catholic Church in 1633, only four years earlier).

      즉, 의심할 수 없는 세 가지는:
      1. 의심하는 나 자신이 존재함
      2. 의심의 기반이 되는 이성 자체
      3.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신 (이 부분이 신의 존재 이유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크게 impressive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당대에 종교와의 대립을 피하기 위해 신 이야기를 슬쩍 끼워 넣었을 수도 있다고 써 있네요.
      주목할 점은, 다윈의 진화론 이전 시기의 설명이라는 것입니다. 진화론은 인간 이성의 출현을 신의 가설을 빌지 않고도 설명해 주니까요.

    • tracer 198.***.38.59

      위의 데카르트 신 증명은 결국 ontological argument인데, 이 ontological argument (a priori proof)는 중세 신학(안젤모 등)에서 시작된 증명입니다. 쉽게 말하면 “신은 그 정의상 완벽한 존재이기 때문에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완벽한 것이 아니니까.”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다음과 같은 연역을 취합니다.

      1. God is, by definition, a being greater than anything that can be imagined. 신은 그 정의 자체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존재이다.

      2. Existence both in reality and in imagination is greater than existence solely in one’s imagination. 상상 속과 현실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크다.

      3. Therefore, God must exist in reality: if He did not, He would not be a being greater than anything that can be imagined. 그러므로, 신은 현실에도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상상 속에만 존재할 것이므로.

      더 간단히 하면,

      1. 신은 완벽한 존재이다.
      2. 존재함은 존재하지 않음보다 더 완벽하다.
      3.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도 위와 비슷한 a priori proof 형태입니다.

      1. 내가 어떤 것의 성질을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그 어떤 것이 그 성질을 참으로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2. 신의 존재는 내가 분명히 파악할 수 있는 신의 성질이다.
      3.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

      ontological argument이 재미있는 점은 다음과 같이도 사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1. 우주의 창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로 놀라운 작품이다.
      2. 창조자의 능력이 낮을 수록, 작품의 퀄리티가 높을 수록 놀라움은 증가한다.
      3. 창조자의 능력이 가장 낮을 때는 존재조차 하지 않을 때이다.
      4. 그러므로, 우주가 최고로 놀라운 작품이 되려면 창조자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5. 그러므로, 신(우주의 창조자)은 존재하지 않는다.

      1. 신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2. 모든 면은 못생김의 면을 포함한다.
      3. 그러므로 신은 완벽하게 못생겼다.

      위와 같은 패로디 외에도,
      중요한 비판으로는, 어떤 존재의 성격(property)은 일단 존재한 다음에야 논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의 성격을 아무리 논해 봤자 뜬구름 잡는 것이지요. 우리가 성격을 미리 부여해 놓고 그 성격 때문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순서가 잘못된 추론이라는 점입니다.

      또,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은 성격이라는 믿음은 참일까요? 존재나 비존재는 낫다 덜하다로 표현할 수 있는 성질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ontological argument는 논리에 오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평신도 68.***.31.43

      신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사물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가능한가?
      생명은 정지상태에서 시작한것일까?
      지금 움직임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보이는 나와 생각하는 나는 다른 존재일까 같은 존재일까?
      생명이전과 생명이후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 roundone 68.***.71.82

      존재의 위치에서 보았을때, Being 이 있으면 동시에 Non-being 도 존재하지요. 신은 자체이기도 하지만 역시 비자체 이기도 하고요. 아울러 비존재의 위치에서 보면 위와 상반되는 것이므로, 신은 존재속에 비존재 이고, 비존재의 동시의 존재라고 봅니다.

    • 머니 70.***.234.178

      복잡들 하군요.

      신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상상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정말 존재한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지요?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시도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 DC 71.***.173.100

      기독교의 신으로 한정해 보겠습니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신은 삼위일체의 신, 편재의 신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도그마이므로 증명되는 것도 이해되는 것도 아닙니다.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입니다.

    • tracer 68.***.184.134

      dc님/
      굉장히 많은 기독교 신학자 및 apologist들이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근거 중심으로 기독교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 DC 71.***.173.100

      tracer님//

      기독교 신학자들도 학자이므로 당연히 개인적인 학설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교리와 부합하느냐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증명이라는게 과학과 논리학에서 말하는 증명과 동일한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 tracer 68.***.184.134

      DC님/
      제 의견에도 종교의 교리/도그마는 faith의 문제이지 이성과 논리로서 따질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이성과 논리를 신앙과 별개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그런 신학자들은 논리와 이성을 버리지 않고도 신앙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지요.

    • 스타킹 76.***.101.223

      신의 존재를 이해하는 혹은 믿는 인간의 논리를 말하는 것 같은데요.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증명할 것이냐, 이성이나 논리로 증명할 것이냐… 그것 아닌가요?

      이성/논리와 과학을 부합되는걸로 생각하는 것이 좀 신기합니다. 그리고, 피조물이 창조주를 판정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인지는 가능할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인지할 정도만의 이성을 갖는것인가요?

    • DC 71.***.173.100

      tracer님//

      기독교는 logos에 기반을 둔 종교입니다(See 요한복음서). logos는 “말(씀)”이라는 의미와 함께 “이성”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기독교의 도그마는 논리적, 과학적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라는 제 말씀이 곧 “기독교는 비이성적이다”라든지 혹은 “기독교 교리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라는 결론을 유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성,” 특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성과 “논리”는 동일한게 아닙니다. 따라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형식논리를 초월할 필요는 있지만 이성을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 tracer 68.***.184.134

      DC님/
      제가 알기로 logos는 이성을 뜻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logic의 어원으로 알고 있는데요, 기독교 신학 내에서 논리를 초월하지만 이성적인 사고의 예가 있다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는, 도그마라는 말의 정의 자체가 “권위에 의해 정해졌으며 감히 의심되지 않아야 하는 믿음”인데 그것이 이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핵심적인 믿음이 이런 도그마와 faith에 의해 운영되는 종교가 이성에 바탕을 둔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네요.

    • tracer 68.***.184.134

      간접경험님/
      이성을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아닌지는 debatable한 이슈이지요 :)

    • 바벨 76.***.101.223

      우리모두 동의하여 한마음에 된다면 이 사이트 바벨탑처럼 망가지겠죠? :-)

    • DC 71.***.173.100

      tracer님//

      dogma는 그 신앙의 대전제입니다. 이 전제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바로 신자들입니다. 우리는 자유로이 이 전제를 의심할 수 있습니다. dogma를 받아 들일 수 없다면, 평범한 신자든 고위 성직자든, 그 신앙을 떠나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tracer님의 말씀 “도그마라는 말의 정의 자체가 “권위에 의해 정해졌으며 감히 의심되지 않아야 하는 믿음”인데 그것이 이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체가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각자의 자유의지에 따라 그 dogma(설령 tracer님의 definition이 옳다고 가정하더라도)를 얼마든지 의심할 수도, 수용할 수도, 배척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tracer님의 질문 “기독교 신학 내에서 논리를 초월하지만 이성적인 사고의 예가 있다면 들어보고 싶습니다”에 대해서는, 먼저 님이 생각하시는 “이성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 부탁 드립니다.

    • DC 71.***.173.100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것은,
      제게는 “신의 존재를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확인하려고 하는 것”과 동일해 보입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위대한 철학자라는 사실은 의심치 않습니다)

      기다려도 답글이 없어 내일 밤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만,

    • tracer 198.***.38.59

      DC님/
      제가 위의 질문을 드린 이유는 DC님께서 특히 기독교에서의 이성은 논리와 구별된다라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드린 질문입니다. DC님께서 이해하시는 기독교 내에서의 이성과 논리의 정의에 기반해서 답변해 주시면 됩니다.

      그래도, 굳이 제게 이성의 정의를 물어보셔야 한다면, 사전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DC 71.***.173.100

      tracer님//

      이틀 동안 out of town하다 이제 들어왔습니다. 제가 댓글을 지체했군요. 죄송합니다.


      사전적 정의는 잘 모르지만, 관련 용어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성” – 저도 tracer님처럼 통상적인 의미로 이해/사용했습니다. “사리에 맞게 일을 처리하다”라든지 “조리에 입각해 판단한다”나 “이치에 맞는 것” 등의 예가 아마도 “이성적”으로 뭔가를 하는 예가 될 것 같습니다.

      “논리” – “경험적으로 얻어진 인과법칙” 이라고 생각합니다.

      “직관” – 아마 “사고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경험에 기반한 두뇌의 종합작용” 정도라 생각합니다.



      1. “이성적”이라는 것은 “논리적”이라는 것보다 상위개념입니다. “이성적”인 판단은 종종 “논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경험적인 “직관”을 포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 우리의 “논리”는 경험적으로 얻어진 인과법칙이므로, 경험의 구속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John이 12시에 광장에서 Jane을 만났다면, 같은 시각 John은 레스토랑에서 Jennifer를 만났을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경험법칙이 이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2번의 예에 대해서 모두가 동의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공통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4. 한편, 2번 예에서, John을 God으로 치환하면, God이 12시에 Jane을 광장에서 만나고, 같은 시각 God이 레스토랑에서 Jennifer를 만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됩니다.

      5.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God은 “편재”하므로, 4번 예가 실현 가능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교리에 따른 “이성적” 결론입니다.

      6. 하지만, 4번 예가 가능하다는 것에는 – 2번 예와는 달리 – 누구나가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일상적인 경험의 범위와 이에 기반한 형식논리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7. 기독교 신자 중 일부는 어떤 영적 경험에 의해 이를 “직관”합니다. 이 특별한 경험은 그들의 다른 일상 경험과 마찬가지로 “실제”하는 경험입니다 (revelation). 하지만, 이 특별한 경험을 일상 차원으로 환원해서 “검증”이나 “증명”을 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현미경으로 God 찾기”와 마찬가지입니다.

      8. 결론적으로, 주요 기독교 신학 (St. Augustinus, St. Thomas Aquinas 등)은 이런 영적 경험 (계시)을 토대로 “이성적”으로 쓰여진 것들이며 동시에 “일상경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므로 “형식논리”는 초월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1시간이 넘게 걸렸군요. tracer님 덕분에 한 번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 tracer 198.***.38.59

      DC님/
      반가운 답변 감사드립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성은 인간 사고방식의 한 가지로서 감정적이나 직관적인 사고와 구별되어 논리성을 갖춘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이성적인 사고를 위해서 논리적인 접근은 필수적이라는 생각입니다. 논리적인 생각의 전개를 충족하는 사고 중 설득력 있는 근거를 가진 sound한 논리적 사고를 이성적이라고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데에 DC님이 들어주신 예가 아주 적절하게 들어 맞습니다.

      지금 들어주신 예는 의도하신 바와는 정 반대로 형식논리인 연역논리는 충족하나 그 전제가 우리의 경험적 직관을 바탕으로 참으로 결론지을 수 없기 때문에 이성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만일 들어주신 예가 이성적이라고 말한다면 다음의 예도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1. Jane은 pink unicorn을 광장에서 보았다.
      2. Jennifer는 pink unicorn을 레스토랑에서 보았다.
      3. pink unicorn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pink unicornian의 교리에 의해)
      4. 그러므로 pink unicorn이 jane과 jennifer에게 동시에 보여진 것은 가능하다.

      저는 위의 예를 이성적인 사고라고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형식논리는 충족하나, 연역적 사고의 soundness는 전제의 참/거짓의 여부에 달려있는데 3번 전제가 보편적인 경험적 직관에 의해 참으로 결론짓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sound하지 않은 논리는 이성적이지 않은 것이지요.

      personal/private revelation은 보편적 진실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정신분열증 환자가 보는 환각이 일부 기독교 신자가 실재한다고 느끼는 경험보다 덜 사실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편집증, 강박증 환자의 개인적 사고를 보편적인 근거로 받아들일 수 없듯이 개인적 영적 경험을 보편적인 근거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일부 기독교 신자가 미쳤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은 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개인적 영적 경험을 굳이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제가 알고 검증할 길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러한 영적 경험이 개인의 삶에 바탕이 되는 것도 이의가 없습니다. 단지 보편적 진실을 주장하는 데에 그러한 개인적 영적 경험을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모든 영역에서는 똑같이 public revelation을 존중하고 personal revelation을 보편적 사실의 근거로 사용하지 않는데 유독 종교 영역에서는 그것을 굉장히 중요한 근거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군요.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 DC 71.***.173.100

      tracer님//

      먼저, 제가 드린 예가 사적계시(personal revelation)을 말씀드린게 아닙니다 (특히 8번에서 말씀드린 영적경험). 사적계시는 공적계시에 부합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고 하지요. 기독교에서 무언가를 가르칠 때는 언제나 공적계시를 근거로 합니다.

      말이 나온김에 – 사적계시가 어떤 “정신병”의 결과인가, 단순한 “환상”인가, 아니면 알려진, 혹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자연 현상”에 불과한가, 아니면 “악마의 환시”인가, 아니면 정말 “신”에게서 왔는가는 교회가 신중히 이성적으로 판단합니다.

      tracer님이 믿는 이성은 굳이 비교하자면 Kant가 말한 “오성” (“칸트의 이성”의 하위단계인)에 가깝습니다. 결국은 오관이 주는 경험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것도 이성입니다. 하지만 이성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논리에 부합하는 것만을 한정해 이성적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편집증, 강박증 환자의 예를 드셨는데, 그들은 그 병으로 인해 일상적인 사고영역도 손상을 입은 이들입니다. 반면 기독교인 중에 정상인은 일상적 판단이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Pink unicorn – “공적 계시”에 기반해 체계적으로 develop된 “핑크 유니콘교”가 등장한다면 공정한 비교가 될 것 같습니다. :)

    • tracer 68.***.184.134

      DC님/

      일부 기독교인들만 경험하는 영적 계시가 사적(private)하지 않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네요. 교회(결국은 교회를 구성하는 종교인들)가 아무리 신중히 판단한다고 해서 누구의 계시가 진정한 신의 계시이고 누구의 계시가 악마의 환시인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DC님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것이 교리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한다면, 그것은 순환논리가 되겠지요. 교리는 영적경험에 근거하며 영적 경험의 진실성은 교리에 견주어 판단한다가 되니까요.

      그렇다면, 다른 종교인들이 주장하는 영적 계시는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지는 계시와 상반되는 주장을 하는 경우 어떤 주장이 옳은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들의 영적 경험은 기독교인들이 느끼는 것만큼 실재적이라고 하고 있을텐데요.

      핑크 유니콘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디벨롭된 organized religion에서 주장하는 교리(예를 들면 우리의 신은 편재한다 등)를 전제로 삼는 연역논리는 모두 다 이성적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또, 그 “체계적”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를 선으로 구분해야 하나요? 크고 작은 종교가 엄청나게 많은데 말이지요.

      잘 떠오르지 않아서 여쭙니다. 기독교의 대표적인 공적 계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