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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에서 절실하게 느끼는 점 하나가 ‘창조성’의 부재 같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상상력의 결핍이겠죠.
어려서는 하도 엉뚱한 발상을 자주 해서 괴짜 소리도 듣곤 했습니다만
언제인가부터 제 사고가 아주 정해진 틀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을 보면 인간을 유전공학으로 찍어내는데
태어날 때부터 알파, 베타, 델타의 세가지 클래스가 정해져 나옵니다.
델타 클래스는 단순 노동에 종사할 인간들인데
이들이 지능적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혹시 창조성이나 상상력을 증진시켜서
높은 계층에 저항할 우려를 싹부터 자르기 위해
델타 클래스의 유아들의 지적 호기심을 삭제하는 교육이 나옵니다.
방안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림책들을 두고 델타 유아들을 집어넣습니다.
아이들이 호기심을 느끼고 그것을 보려는 순간 아이들에게 고통을 체험하도록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일종의 세뇌를 통해 델타 클래스는 지적인 호기심을 전혀 갖지 못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제 생각엔 한국의 교육에 그런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초중고 12년간은 ‘타율’에 지배되는 생활이었습니다.
단순히 주입식 교육이라는 형식 외에도 교사들의 태도 역시 상상력이나 창조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정확한 답만을 원했지 그것을 읽고 호기심이 생겨서 아이들이 상상하는 것을 더 전개하도록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상상력을 가지는 것을 교사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나쁜 수업 태도로 보고 징벌을 하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그런 징벌은 결국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델타 아이들에 대한 세뇌와 비슷한 작용을 할 수 있겠죠.
솔직히 한국의 과학기술을 보면 학술적으로 근본적 영역에 해당하는 연구보다는 남이 해놓은 결과를 가지고 흉내를 내는 것들이나 단순한 테크닉상의 발견들이 많습니다.
학계에 두고두고 ‘이론’으로 남을 연구는 애초부터 별로 없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단순히 과학에 대한 투자의 문제나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안하고의 차원이 아닌, 근본적 교육 방식의 문제 같습니다.
심지어 한국에서 박사할 때에도 저희 스승님은 자기가 가진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제자들을 평가하고 다그치면서 본인 의견과 조금만 다른 생각을 의견으로 내놓으면 곧바로 묵사발을 만드시는 분이었습니다.
그 생활 몇년 하다보니 그 분이 나름 뭔가 디스커션을 하시겠다고 물어보시면 머리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되지는 않고 뭐라고 대답하면 깨지지 않을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버릇이 그 분한테서 떨어져 지내는 지금도 안없어진 것 같습니다.
물론 스승님 만나기 전부터 제가 초중고를 다니면서 한국 교육에 너무나 잘 적응하는 바람에 상상력이 더 없어진 것일지도 모르고, 선천적으로 창조성이 별로 없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만, 제가 자율적인 교육을 하는 나라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보다는 상상력이 풍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타율적인 주입식 교육이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일정 수준의 이상의 졸업생을 찍어낼 수 있는 효율성이 있기는 합니다만 한국은 이제 그 단계는 넘어서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